우리나라 사람들은 개고 애고, 그저 사랑만 주면 완벽해진다고 착각을 한다. 결핍, 훈육의 가치를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르고 있음. 잘 모르는게 아니라, 그냥 아얘 모름. 근데, 그걸 알려고 조차 하지 않는 이유가 정말 그 대상을 사랑해서가 아님. 그 대상이 애든, 개든 그 대상을 제대로 교육 시키고, 규범안에 움직이게 하고 가르쳐야 할때는 감정을 배제 해야 하는게 얼마나 어렵고 귀찮고 번거로운줄 알기 때문에 그냥, 가장 쉬운 무조건 사랑해줌. 최소한, 나중에 뭔가 잘못되어도 내가 널 얼마나 사랑했는데, 얼마나 끔찍히 키웠는데 라는 말로 퉁치고 자신은 그 책임감에서 가벼워 질수 있기 때문임.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식도 개도, 교육의 측면에서는 희생적인 사랑을 전혀 하고 있지 않음.
유럽 미국쪽의 스몰토크는 우리가 생각하는 스몰토크랑 약간 차이가 있음. 우리의 스몰토크는 친하니깐, 안면이 있으니깐 하는 거라면 유럽쪽 스몰토크는 나는 당신을 경계하지 않는다 혹은 경계심을 완화하기 위한 스몰토크임. 서로 다르기때문에, 각자 다른 개체이기에 대화한다와, 같기 때문에, 동질감을 느끼는 개체이기에 대화한다의 차이인거지. 그런말 있잖아. 남자는 친해지기 위해 사우나를 가지만 여자는 친해지고나서 사우나를 간다 라고. 그런거랑 비숫하다 생각하면 된다.